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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한 걸음 더

세계를 놀라게 만든 완벽한 스토리텔링- 4·27 남북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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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드라마 같았던 4·27 남북정상회담이 끝난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2018년 4월 27일을 블로그에 꼭 기록해야지 했던 욕심조차 벅차서 한참을 숙제처럼 안고 있다가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포스팅을 한다.


실은 그 날을 앞두고는 바깥 약속도 일부러 잡지 않았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어마어마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다른 누구의 관점이 아닌 내 눈과 오롯한 감각으로 생생하게 만끽하고 싶었다. 당일에는 새벽부터 일어나 TV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하루를 온통 남북정상회담 중계와 뒷이야기에 홀릭 했다. 눈앞에 펼쳐지는 엄연한 현실이 역설적으로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중계를 보면서도 종종 멍할 정도였다.



한마디로 이런 정상회담은 난생 처음 봤다.

당연하지. 정상회담이라는 것 자체를 생중계한 것이 사상 최초이니... 으레 정상회담이라하면 양국의 두 정상이 만나서 악수하고 기념 촬영하는 그림을 밋밋하게 편집한 자료 화면에다가 그 결과니 전망이니 건조한 리포팅 정도를 덧붙인 것만 보고 들어왔지, 이번처럼 만남부터 헤어짐까지 두 눈으로 전 과정을 이렇게 생생하게 지켜본 적은 없었다.



이번 4·27 남북정상회담이 가장 놀라웠던 점은 그저 재미없고 의례적인 외교관례로 생각했던 정상회담이 한편의 영화를 보듯 완벽한 스토리텔링과 함께 펼쳐졌다는 점. 물론 역대의 정상회담, 특히 남북정상회담에는 언제나 남다른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결과론적인 에피소드라고 한다면 이번 4·27 남북정상회담은 회담을 앞두고 사전에 모든 상황들을 관통하며 철저하게 설계된 스토리텔링과 현장의 의외성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진진했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군사 분계선을 넘어 남측 땅을 밟는 순간



먼저, 누가 뭐래도 이 날의 역사적 의미를 상징하는 단 한 컷이자 무한한 스토리텔링의 원천이 될 장면은 바로 이 장면일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 지도자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군사 분계선을 넘어 남측 땅을 밟는 순간!


#문재인 대통령, 10초간의 깜짝 월경



하지만 잠시 후 진정한 씬 스틸러가 나타났으니, 주인공은 다름 아닌 문재인 대통령! “나는 언제 넘어갈 수 있겠냐?”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에 “그럼 지금 넘어가볼까요?”라며 손을 이끈 김정은 위원장의 재치로 연출된 한 컷! 단 10초간의 깜짝 월경이었지만 이 한 장면을 계기로 펼쳐질 미래의 스토리텔링은 가히 무한하다.


#평화의 집 그림 속에 숨은 스토리텔링




정상회담이 펼쳐진 평화의 집 곳곳에도 스토리텔링이 숨어있다. 로비 전면에는 민정기 화백의 북한산 그림을, 환담장 앞 편에는 장백폭포 성산일출봉 그림을 걸어 백두산부터 제주까지 남북의 경계를 넘어 한반도를 담았다.



특히 환담장 뒷벽에는 김중만 작가의 훈민정음이라는 작품이 걸렸다. 문재인 대통령의 설명에 따르면 “서로 사맛디는 우리말로 서로 통한다는 뜻이고 글자에 미음이 들어가 있다. 맹간원인은 만들다는 뜻이다. 거기에 기역을 특별하게 표시했다. 서로 통하게 만든다는 뜻이고 사맛디의 미음은 문재인의 미음. 맹가노니의 기역은 김 위원장의 기역이다” 라는 것.


#남북정상 공동 기념 식수



오전 회담을 마치고 각자 오찬과 휴식을 가진 후 진행된 판문점 남북 정상 공동 기념 식수는 그야말로 정교하게 기획된 스토리텔링이 아닐까 싶다. 기념 식수를 위해 공수한 소나무는 정전협정이 체결되었던 1953년에 태어난 소나무라는데, 문재인 대통령과 동갑이라고 한다. 특히 소나무는 군사분계선(MDL) 인근 '소 떼 길'에 심어졌는데, 이곳은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지난 1998년 소 떼를 몰고 고향을 방북했던 곳이다.

또 두 정상은 이 나무를 한라산과 백두산의 흙을 함께 섞어 식수한 뒤, 그 위에 문재인 대통령은 대동강 물을, 김정은 위원장은 한강수를 뿌렸다.


#4·27 남북 정상회담의 백미 '도보다리 산책 및 담소'북정상회담의 백미 '도보다리 산책 및 담소'




남북 온 겨레와 세계인의 마음 속에 단 한마디 “평화 Peace"라는 단어를 불러일으킨 장면!

두 정상의 '도보다리 산책 및 담소'는 장장 12시간여에 걸쳐 펼쳐진 4·27 남북정상회담의 정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끊겼던 다리를 단장한 한반도기의 컬러 ‘코리안 블루’의 선명한 색감, 그 때문인지 일견 비현실적이기까지 했던 그 다리 위를 두 발로 나란히 산책하는 남북 정상의 모습, 취재진을 물리치고 마이크도 끈 채 오롯이 두 사람만 주고받은 대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그저 바람과 새소리만이 가득한... 앞으로 “평화”라는 이미지는 이 도보다리에서의 한 컷으로 대변되지 않을까 싶다.


#남북 평화 시대를 여는 만찬 요리



한반도의 봄을 상징하는 초콜릿 돔을 깨는 세리머니를 비롯해 정상 회담 후 이어진 만찬에서도 재미난 스토리텔링을 발견할 수 있다.  본격적인 회담이 시작 되기 전 두 정상간의 인사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언급하면서 일약 주인공으로로 떠올랐던 '평양냉면' 외에도 만찬 메뉴 하나하나에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이 숨어있다.


#문배주

먼저 남북 정상이 건배에 쓸 만찬주로 선정된 술은 “문배주”. 고려 시대 이후 천년을 이어온 술이자 중요무형 문화재로, 대한민국 식품명인 7호이기도 하다. 문배술의 고향은 평안도이지만 지금은 남한의 명주라고 한다.



#통영 문어냉채

전채로는 고 윤이상 작곡가의 고향 남해 통영바다의 문어로 만든 냉채가 올랐고,


#부산 달고기 구이

부산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문재인 대통령이 좋아한다는 생선 요리로 ‘달고기 구이’가 올랐다.

과거에는 흔하고 싼 생선이었지만 지금은 고급생선이 되었다는데, 북한 해역에서는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도미찜과 메기찜

좋은 날 귀한 음식을 준비하는 우리 민족의 마음을 담아 대표적인 잔치음식 재료인 '도미'를 사용한 ‘도미찜과 메기찜’. '메기'는 한반도 어디에서나 사는 민물 종으로 우리 민족의 기억과 내일을 염원하는 소망을 담아 준비했다고 한다.


#신안 민어해삼편수

우리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애썼던 인사들의 뜻을 담은 요리도 눈길을 모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인 신안 가거도의 민어와 해삼초를 재료로 쓴 '민어해삼편수',




#비빕밥과 쑥국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 김해 봉하 마을에서 오리농법 쌀로 지은 밥과 DMZ 산나물로 만든 비빔밥과 우리나라에서 흔한 쑥으로 만든 쑥국,



#서산 한우 부위별 구이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이 소 떼를 물고 올라가 유명해진 충남 서산목장의 한우를 재료로 한 숯불구이까지 요리 하나하나에도 그저 먹고 나면 그만인 평범한 음식이 아닌 남북정상 회담의 의미를 녹여내기 위한 노력이 엿보인다.



#백두대간 송이 꿀차, 제주 한라봉 편

마지막으로 디저트는 백두대간 송이 꿀차와 제주 한라봉 편으로, 백두대간부터 제주도까지 한반도 전역에서 직접 재료를 공수해서 만든 요리가 선을 보였다.


#스위스식 감자전 '뢰스티'

북측을 배려한 요리 선정의 정수는 바로 김정은 스위스식 감자 요리인 ‘뢰스티’. 북한 국무위원장이 유년시절을 보낸 스위스의 전통 요리를 우리식으로 해석했다고 한다.



#옥류관의 평양 냉면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평양냉면’. 남측이 제의한 만찬 요리로, 북측은 쫄깃한 면발과 최고의 냉면 맛을 위해 평양 옥류관의 요리사를 판문점으로 파견하고 직접 제면기를 공수해왔다.




#남북정상회담 폐막식: 서태지 발해의 꿈


장장 12시간 만에 막을 내린 남북정상회담은 마지막 한 장면까지도 마르지 않는 이야기의 샘이었다. 게다가 '환송 공연'이라니! 특히나 자유의 집 전면에 미디어 파사드로 공연이 펼쳐지며 처음으로 흘러나왔던 음악이 무려 서태지의 “발해의 꿈”이었다. 이거 진짜 실화?



남북정상회담은 개별적인 에피소드에 숨어있는 스토리텔링도 훌륭했지만 그보다 더 뛰어난 것은 전체적인 흐름이었다.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라가면서, 그 하루의 완벽한 이야기에 스스로 동화되고 나아가 감정적으로 벅차올랐던 경험은 쉽게 잊혀지기 힘든 기억이 될 것 같다.


 정치, 경제, 사회적 이슈를 TV, 인터넷, 스마트폰 같은 다종다양한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오감으로 접하고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요즘 세상에서 그저 밋밋하고 건조한 “~이랬다더라”식의 일방적인 소통 방식은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는 것 같다. 겉으로 보이는 현상 이면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통해 메시지를 이해하고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아닐까 싶다. 4·27 남북정상회담이 보여준 ‘스토리텔링’의 힘이 앞으로 국제 정상회담 문화의 패러다임을 바꾸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보는 건 무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