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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두스의 "맛" 이야기

'맛'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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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한 더위 때문인지 한동안 의욕이 떨어져 있었다. 포스팅도 한참이나 미뤄두었다. "블로그를 너무 오래 방치한 것 같은데..." 밀린 방학 숙제하는 마음으로 정신을 다잡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오랜만에 올리는 포스팅에 어떤 내용을 쓸까.. 그래 이 이야기를 한 번 정리하고 넘어가자. 

맛!

                                참 맛이 없었는데, 한국사람들 블로그에서 맛집으로 '잘못' 소문난 로마의 레스토랑 요리.

맛이라... '음식을 먹었을 때 혀가 느끼는 감각, 나아가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느끼는 기분'을 두루 표현하는 말이다. 어쩌다보니 요사이 '맛집'이다 '먹방'이다해서 '맛있는 음식'에 대해 탐닉이 어마어마하다.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맛집이고, TV 채널을 돌리다가도 태산 같은 음식을 쌓아 두고 폭포수 같은 땀을 쏟으며 입이 터질 듯 음식을 욱여넣고 '맛있다'를 연발하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맛있다' 정도의 평범한 감탄사로는 어필하지 못한다. '마약'이다 '중독'이다 온갖 현란하고 자극적인 수사가 넘쳐난다. 

국민 모두가 맛집 매니아에, 여행은 자고로 맛집투어가 당연하며 인증샷은 필수! 이 정도면 그저 뜨겁다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이건 일종의 '현상'이다.  세상은 맛있는 음식과 맛없는 음식으로 나뉘어 있고, 맛있는 음식을 못먹어 봤거나 혹은 안먹어봤거나, 맛집에 가본 사람 혹은 안 가본 사람으로 나뉘어지며, 때로는 이 조그만 땅덩어리에 식당은 온통 맛집 뿐인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남들 다 맛있다고 하는데 내 입에 맛없으면 내 입이 잘 못 된 것 같아 송구해질 지경이다. 어쩌다 '맛'도 모르는 인간 취급 안 받으려면 부지런히 '맛'에 홀릭하고, '맛'을 자랑해야한다.

대체 '맛'이 뭐길래!

 다급히 맛집 검색해서 찾은 피렌체의 맛집으로 소문난 레스토랑의 스테이크. 넘나 맛있어서 깜짝 놀람.

맛있다는 건, 오롯이 주관적인 감정이고 체험이다. 음식 자체가 맛있어서 맛있기도 하지만 그게 아니라도 그 음식을 먹을 때 누구랑 먹는지, 하다못해 그릇이며 세팅이며 가게 분위기가 어떤지, 또 특정 음식을 먹는 동안 무의식 속에서 꼬리를 물고 따라오는 추억 같은 그 모든 것이 더해진 분위기의 총체가 '맛있었다'는 기억으로 저장될 수도 있다. 

내가 맛있어도 남들 입에는 안맞을 수 있고, 남들이 다 엄지 척해도 나혼자 속으로 슬며시 '엄지 아래' 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인 맛이라는 것이 있기에 소위 미식가를 자처하는 이들은 그것을 찾아서 부단히 맛보고, 혀의 감각을 단련하고, 표현하고, 재현하려 애쓰는 것이다. 그러니 그 노력을 비웃거나 폄훼하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이거다. '맛'이라는 것에 집착하고, 맛있다와 맛없다고 나뉘는 양단의 평가만이 있는, 또 '맛'이 아닌 '맛'까지 맛있다고 강요하는 분위기. 나아가 이것을 수단으로 삼는 일부 순수하지 못한 '의도' 때문에 개인적인 느낌마저 오해와 비난을 사는 것. 개인이 소박하게 느낀 맛에 대한 감상마저 곡해되는 상황은 어디가 잘못되었다.    

나의 포스팅 원칙은, 남들은 맛있다는데 내 입맛에 아닌 집을 굳이 맛없다하고 싶지 않아서 맛없는 집은 안쓰고, 그저 내 입에는 맛났던 집을 맛있다고 쓰자는 것. 그래서 포스팅은 비평보다는 칭찬 위주다. 

그 음식을 먹으며 내가 느꼈던 혀의 감각은 물론 기분까지 두루 아울러 '맛'있다고 생각했던 감정을 기록으로 남겨 두고 싶어서 일기처럼 썼다. 그래서 다소 진지했을지도 모른다. 카테고리의 제목 또한 '지극히 주관적인 맛집일기'이다. 

영혼없이 체험 과시형으로 비싼 맛집 투어하지 않는다. 일부러 찾아가서 먹어본 곳도 가끔은 있겠지만 되도록 일상에서 오며가며 들른 어떤 집에서 괜찮다고 내가 느꼈을 때, 적어도 두 번 이상은 가 본 집(혹은 가 볼 집) 이야기를 쓴다.    

이런 나름의 원칙으로  '지극히 개인의 취향'이 망라된 기록인 블로그에 '지극히 개인적인 맛 이야기'를 쓰고 있다. 내가 내 지갑을 기꺼이 열어 사먹어 보고 '맛있다' 혹은 '괜찮다'고 느낀 이야기이다. 특정 식당이나 카페를 홍보할 목적도, 이걸로 어쩌고픈 아무런 능력도 야심도 없었기에 맛집 홍보 블러거로 오해받는 일따위는 상상도 안해보았다. 더구나 그리 많은 이들이 방문하는 블로그도 아니므로 언감생심.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은데, 요사이 좀 힘이 빠진다. 아이고 다 무슨 의미가 있나... 맛있는 음식 먹고 말면 되지 뭔! 이런 생각.  열정적으로 맛 포스팅을 하고, 열정적인 댓글로 공감 혹은 비공감을 표현하는 분들의 열정과 에너지가 부럽다. 씩씩한 마음이 필요한 여름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