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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좋다

노무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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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무현입니다>

감독: 이창재   주연: 노무현

 지하철 공사가 한창인 90년 대 어느 도심 한복판.

 오버코트를 걸친 자그마한 체구의 남자가 씩씩하게 걸어간다.

 지나가는 낯선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는 남자의 카랑카랑한 목소리.

 “안녕하십니까? 노무현입니다.”

 몇몇은 어색한 듯 악수를 받고, 몇몇은 무표정한 얼굴로 외면한다. 머쓱한듯 싱겁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어가는 남자의 뒷모습. 아마도 과거 TV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을 영화의 예고편으로 쓴 것 같은데, 그야말로 너무나 '노무현'스러운 장면이었다. 홀린 듯 이 영화를 꼭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개봉한지 몇 주가 지나서야 보게 된 영화 <노무현입니다>. 개봉 10일만에 벌써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더니, 애매한 시간대, 번잡한 곳에 위치한 상영관이 아님에도 좌석이 제법 가득찬 걸 확인 할 수 있었다.

  영화는 그의 인생 중 가장 드라마틱했던 2012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을 뼈대삼아 그를 기억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터뷰를 토대로 구성된 다큐멘터리다.

서슬 퍼런 군부 독재에 맞서 잘 나가는 세무 전문 변호사를 버리고 인권 변호사로서 불꽃 같은 인생을 살았던 남자,

 야합과 협잡이 만연하던 정치판에 나 홀로 “이의있습니다”를 외쳤던 용감한 사나이,

 지지율 2%의 꼴찌 후보에서 마침내 대통령이 된 입지전적 주인공,

 상고 출신으로 단 50명만 뽑는 사법고시에 당당히 합격한 초 엘리트임에도 일평생 고졸 대통령이라는 편견과 무시에 시달렸던 한 인간,

 자신 때문에 옥고를 치른 동지를 생각하며 솟구치는 눈물을 참지 못하는 여린 사람,

 동고동락한 운전기사를 위해 그의 신혼 여행길을 손수 운전해준 착하고 따뜻한 인간,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았으나 오히려 그 권력에 스러진 불운한 대통령,

 재임기간 보다 퇴임 후 오히려 대중의 인기를 누렸던 아이러니한 인생,

 그리고 스스로 몸을 던짐으로써 모욕을 거부하고 존엄을 지킨 지독한 신념.


 하지만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이토록 매력적인 한 인간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대신 노무현과 더불어 한 시절을 뜨겁게 불태웠던 “노무현의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그것도 몹시 담백한 톤으로. 그러나 애써 냉정을 지키려할수록 터져 나오는 눈물을 어쩌지 못하는 인터뷰이들의 모습은 관객을 울리고 만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늦었지만 절절한 고백이 담긴 연서와도 같은 다큐멘터리다.

 그가 떠난 지 8년이 지났지만 아직 그를 보내지 못했던 이들, "노무현" 이름 석 자를 듣는 것만으로도 베인 듯한 아픔이, 주체 없이 뜨거운 눈물이 차오르는 많은 이들을 향해 이제는 그만 그를 보내줘도 되지 않겠냐고 건네는 따뜻한 위로 같다.

 예고편을 보고 난 후 그의 뒷모습이 내내 잊혀 지지 않았다. 정치인으로서 대중으로부터 일평생 겪었을 무시와 무안함, 상처를 숙명으로 감수하며, 되려 초연해 보이기까지 했던 그의 낮은 어깨가 뭉클했다. 민망함을 감추기 위해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넉살 뒤에 감춰진 타고난 명랑함과 유머. 그래! 바로 이런 페이소스야말로 그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치명적 매력이었지. 그래서 나는 노무현다운 여운이 녹아있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가장 좋았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저렇게 콧노래를 부르며 뚜벅뚜벅 사람들 속으로 걸어가는 정의로운 또 다른 노무현이 있겠지. 그에게 진심으로 뜨거운 응원을 보낸다.

사족...

 나는 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을 찍었지만 열혈 노빠는 아니었다. 노사모도 물론 아니고, 어디 가서 대놓고 목청 높여 그를 변호한 적도 썩 많지는 않았던 용기 없는 사람이었지만 마음 속으로 그를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인 게 참 좋았는데 너무 욕하는 사람이 많아서 자주 속이 상했고, 왜 저렇게 욕을 먹을까 싶어 부아가 나서 외면했던 적도 있었다.

 아침에 늦잠을 자고 있다가 그가 스스로 몸을 던졌다는 비보를 전해들었다. 그 순간부터 일주일 내내 눈물이 그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뉴스를 보다가 밥을 먹다가 사람들이랑 이야기를 하다가 왈칵 눈물이 쏟아졌더랬다. 미안했고 아팠다. 지금도 추모 행렬이 끝없이 늘어섰던 대한문 앞 풍경과 그의 상여가 지나가던 광화문 영결식장을 떠올리면 콧등이 시큰해져온다. 이제 좀, 좀, 편안하게 그를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