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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소설 읽는 여자

<너무 시끄러운 고독>-보후밀 흐라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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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번 포스팅에서 종종 제목에 이끌려 소설을 살 때가 있다는 고백을 했는데, 또 하나 책을 고를 때 나를 홀리곤 하는 요소가 바로 띠지에 박힌 카피다. 서점에 진열된 수많은 신간들 틈에서 단 한 두 줄로 독자의 시선을 잡아끄는 당당한 카피도 매력적이고, 그 속에 무엇을 담을지 고심을 거듭한 편집인들의 눈물겨운 고뇌가 느껴져서랄까.


너무 시끄러운 고독


작가/ 보후밀 흐라발



 그런 점에서 오늘 소개하려는 책은 ‘나’라는 독자를 붙드는데 띠지가 제대로 열 일 했다. 일단 제목인 <너무 시끄러운 고독>에서부터 눈길이 머물렀는데(이런 형용 모순적인 제목들 좀 좋아함 ㅎㅎ), 띠지에 떡하니 쓰인 문구가 다름 아닌,


“국내 소설가 50인이 뽑은 2016년 올해의 소설”


게다가


“체코의 국민작가 보후밀 흐라발 필생의 역작”


 무려 “국민 작가”에다가 “필생”, “역작”……. 더욱이 체코 작가님은 프란츠 카프카, 밀란 쿤데라 선생님 이후 아마도 처음? (최근 2-3년간 소설을 통 읽지 못했음) 또한 이름마저 “보후밀 흐라발”이라니 어디 가서 잘난 척하기 딱 좋지 않은가 말이다. (물론 여러 번 시도했지만 남들 앞에서 한 번 만에 이름을 발음하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실은 띠지 속 문구로만 따지자면 독창성도, 문학성도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하지만 “국내 소설가 50인이 뽑았다”는 공신력 넘치는 팩트 더하기, “오냐! 그렇다면 국내 소설가 50인께서 도대체 왜 뽑으셨는지 내가 확인해주마!”하는 도전 정신에 불이 붙으며 일단 go!!


 각설하고, 나는 첫 문단부터 완전히 빠져들었다.


“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 일이야말로 나의 온전한 러브 스토리다. 

삼십오 년째 책과 폐지를 압축하느라 삼십오 년간 활자에 찌든 나는, 

그동안 내 손으로 족히 3톤은 압축했을 백과사전들과 흡사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나는 맑은 샘물과 고인 물이 가득한 항아리여서 

조금만 몸을 기울여도 근사한 생각의 물줄기가 흘러나온다………….

(중략)”

거리.


 주인공인 한탸는 삼십오 년간 폐지 압축공으로 일하고 있다. 어둡고 더러운 지하실이 그의 작업장이다. 천장에 달린 문에서는 매일 책들이 쏟아져 내린다. 니체와 괴테의 빛나는 문학 작품들부터 미로슬라프 루테나 카렐 엥겔뮐러가 쓴 극평들까지……. 그의 임무는 맨손으로 압축기를 다루며 끊임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인류의 위대한 정신 문화적 유산들(하지만 이제는 폐지에 불과한)을 신속히 파쇄해서 압축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는 파괴될 운명인 폐지 더미의 매력에 운명처럼 이끌린다. 쏟아지는 책들을 읽고 또 읽으며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게 된다. 바퀴벌레와 쥐가 들끓는 더러운 환경에서 지내며, 소장으로부터 모욕적인 독촉과 욕설을 들으면서도 책만 생각하면 고되고 지루한 노동을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그의 소망은 퇴직한 후에도 압축기를 사서 죽는 그 순간까지 그 일을 하는 것. 하지만 어느 날 신식 파쇄 장비가 들어오면서 한탸의 삶은 송두리째 뒤흔들리게 되는데……. 과연 그는 그 자신의 소망을 지켜낼 수 있을까.


의 수준은 페이지 수와 비례하지 않는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불과 130쪽 남짓한 짧은 소설임에도 책의 수준이란 결코 페이지 수와 비례하지 않음을 증명해 보인다. 작가는 길지도 않은 소설에서 한탸의 파쇄 작업을 집요할 만큼 세세하고 비중 있게 묘사하고 있는데, 간명하고 아름다운 문체의 힘과 위트 덕분에 폐지 작업장 인부라는 한탸의 직업이 우아하게 느껴질 정도다.



언컨대, 이것은 러브 스토리다

 소설은 단언컨대 지독한 러브 스토리이다. 마치 책을 인격이 부여된 운명의 연인처럼 소중히 여기는 그의 모습을 단 한 장면으로 응축한 대목이 있다.

 한 때 파쇄장으로 쏟아져 들어온 프로이센 왕실의 도서를 알아본 한탸는 이 책들을 원래 있던 자리로 돌려보내기 위해 잠시 피신시켜 둔다. 그러나 누군가 책의 은신처를 누설하는 바람에 이 책들이 전리품으로 규정되어 트럭에 도로 실려 기차역에서 일주일 내내 억수 같은 비를 맞으며 방치되고 마는데…….


“그곳에서 한 주 내내 억수 같은 비를 맞으며 열차의 무개차량들에 실려 있었다. 

마지막 트럭이 역에 도착 했을 때 열차 차량들에서는 

검댕과 인쇄용 잉크가 뒤섞인 금빛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 광경을 목격한 나는 가로등에 몸을 기댄 채 할 말을 잃었다. 

마지막 차량이 안개비 속으로 사라졌을 때 

내 얼굴에서는 눈물과 빗물이 뒤섞여 흘러내렸다. 

역에서 나오는데 순경이 보이기에 그에게 다가가 두 손을 교차시켜 내밀며 애원했다. 

손에 수갑이든 포승이든 채워달라고, 

나는 죄를, 인륜을 거스른 죄를 범한 참이라고.”


 이 남자의 안타까운 순정에 나는 진심으로 가슴이 뭉클해졌다. 한탸의 모습은 마치 사랑하는 연인이 망가져 가는 것을 지켜볼 수 없어 몸부림치는 남자 같다.  폐지 작업장에서 책을 대하는 한탸의 태도, 나아가 인생에 대한 철학은 그 누구보다 지적이고 품위가 넘친다. 그것은 일부러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닌, 그 인간이 타고난, 또한 마치 솜이 알콜이 빨아듯이듯 책 속의 진리와 지성을 흡수함으로써 완성된 지성 넘치는 한 인간의 품격인 것이다.

 

 소설 전반에 녹아있는 뛰어난 문학성은 물론이고 메시지 또한 그 어떤 철학책보다 묵직하다. 마치 시시포스 신화처럼 끝없이 노동을 하는 한탸의 모습은 생활인이라기보다 노동을 통해서만이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인간의 숙명을 대변하는 철학자와 같다. 소설은 노동을 대신할 기계의 등장 이후 인간이 맞닥뜨려야 하는 삶의 변화, 그 속에 숨어 있는 문제를 깊이 있는 통찰로 보여주며 노동과 인간성 상실의 세태를 풍자한다.


“늘 무언가를 세심하게 응시하고 고군분투하는 사람들, 

때로는 이 세상과의 싸움에서 패배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고요하고도 강력한 ‘러브 스토리’

-소설가 손보미-


 책을 읽는 내내 도대체 이 남자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 아니 이 남자의 절절한 “러브 스토리”가 어떤 종말을 맞이할 지 궁금해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책장을 넘길수록 비극으로 치달아가는 애절한 러브 스토리를 읽고 있자니 정말로 가슴이 미어졌다. 심지어 몇 번이나 책장을 덮고 감정을 추슬러야했다. 대낮에 홀로 카페에 앉아 소설을 읽으며 눈물을 훔치는 주책없는 사람이 안 되려면...... .


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세상에 나왔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작가 본인이 “나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세상에 나왔다”고 선언할 만큼 그의 정수가 담긴 작품이라고 한다. 당연하게도 “국민 작가”의 “필생” “역작”이라는 수식어가 조금도 요란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소설을 인정한 “국내 소설가 50인”에게 엄지 척!!


 ‘프라하의 봄’ 이후 밀란 쿤데라를 비롯한 많은 체코 작가들은 프랑스 등으로 망명해 프랑스어로 작품을 썼다. 하지만 보후밀 흐라발은 끝까지 체코에 남아 체코어로 작품을 썼다. 아마도 당연히 ‘블랙리스트’에 올랐을 터이고, 무려 20여 년간 정부의 감시를 받으며 출판을 금지 당했다. 그가 한국 독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이미 전 세계 30여 개국 언어로 출판되어 수많은 해외 독자들과 작가들 사이에서 ‘작가들의 작가’로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해외 언론들은 그를 “체코 소설의 슬픈 왕”이라 부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