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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대통령이 참석한 6.10민주항쟁기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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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현재 국가기념일은 1년 중 45일. 이 중에 국가보훈처에서 주관하는 기념일은 총 8일이다. 


 특히나 6월은 ‘호국보훈의 달’답게 유독 기념할 만한 날이 많다. 6.6 현충일, 6.10 민주항쟁기념일, 6.25 한국전쟁 기념일 등 국가 보훈처 주관의 기념일만도 3일이나 된다.


 이런 날들엔 당연히 기념식도 열리는데, 지금까지 이런 기념식을 단 한 번도 처음부터 끝까지, 혹은 일부분이라도 집중해서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헌데 그랬던 내가 요즘 국가 기념식을 챙겨보고 있다. 6.10 민주항쟁기념식을 TV 중계로 본 것도 올해가 처음인 것 같다.


2017 6.10민주항쟁기념식


 6.10민주항쟁기념식에 현직 대통령이 참석한 것은 10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지난 달 5.18민주화운동기념식에는 9년 만에 대통령이 참석했다. 그래서인지 대통령이 새로 취임한 뒤로 주변에서 국가 기념식을 챙겨본다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다.


 나만 해도 새 대통령 취임 후 기념식을 거의 다 본 것 같다. 처음부터 다는 아니라도 연설을 꼭 챙겨 보았다.


 어지간해서 빠지지 않았던 중국어 학원에 처음으로 결석한 날도 대통령 선거 다음날, 즉 취임 선서식 날이었다. 


 내 손으로 뽑은 후보가 인수위 기간도 없이 다음날 당장 대통령 신분이 되는, 앞으로 대한민국 역사에서 다시 보기 힘들고, 절대 그래서도 안 될, 특별한 역사의 생생한 감동을 라이브로 즐기고 싶어서였다. 


 특히 바로 전날 열린 유세에서 민간인 문재인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던 것을 생각하면 더욱 드라마틱한 느낌이 들었다.


 이 날 가장 기대한 것은 새 대통령이 처음으로 하는 공식 연설인 취임사였다. 전반적으로 이 날의 모든 흐름이 좋았는데 특히 대통령의 취임사가 너무 좋았다. 이전에 대통령 취임사가 이렇게 내용이 충실하고 뭉클한 적이 있었던가. 

 

 몇 년 전, 바다 건너 남의 나라 대통령 취임사가 그렇게 명문장이라며, 영어 좀 합네 하는 사람들이 원어로 들어라, 원문으로 읽어라 유난 떠는 것을 보며, 어쩜 남의 나라 대통령은 이리도 멋진 연설을 해서 전세계인이 다 관심을 가질까 많이 부러웠던 시샘과 서운함이 싹 보상되는 느낌이었다.


2017 5.18 민주화운동기념식

 

 그리고 드디어 5.18 민주화운동기념식. 대통령 취임 후 첫 공식 행사였던 광주에서 나는 처음으로 대통령의 연설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대통령 덕후’가 되고 말았다. (세상에나! 예전의 어느 선거 유세에서 할머니들이 전 대통령이었던 여자를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에 몸서리쳤던 내가.)


 짧고 간결한 문장, 선명한 메시지, 부르네 안부르네 말도 안 되는 논쟁에 깔끔하게 종지부를 찍으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온 국민의 민주화 정신이 응축된 노래로 규정하는 명쾌함! 이제 국민 누구나 마음껏 “광주”와 “5.18”을 자랑스러운 역사로 인정할 수 있도록 정의하는 단호함! 정말로 속이 다 후련했다.


 그런데 그만큼이나 좋았던 것은 써 준 원고를 읽지 않고, 자기 말로 풀어내는 대통령의 모습이었다. 참으로 이렇게 ‘말 같은 말’을 하는 대통령이 얼마만인가 말이다.


 내용도 더 할 나위 없었지만 다른 이들의 연설을 경청하는 모습은 더 좋았다. 정점은 모두가 느꼈듯 5.18 유가족 김소형 씨의 추모사를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퇴장하는 그를 뒤 따라가 기어코 안아주던 장면, 그리고 기념식에서 눈물을 훔치는 대통령이라니. 나는 속으로 외쳤다.


진짜다.”


2017 노무현대통령 서거 8주기 추모식


 낮은 경호를 내세우고 있어서일까. 여러 기념식의 분위기 또한 딱딱하지 않고, 형식에 치우치지 않은 것 같아 보는 사람도 자연스럽다. 

 

 그 뒤 노무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모식에서의 모습도 그랬다. 불과 1년 전 그리고 지난 8년 간 그 곳에서 상주의 입장으로 추모객들을 맞이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에게서는 여전히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의 모습이 보였다.

 

 대통령이라는 슈퍼 파워를 차지한 권력자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하여 대통령이 된 것인지를 강박적으로 잊지 않으려 하는 다짐을 본 것 같아 한편 짠하기도 했다. 

 

 물론 이 날도 연설은 기대를 만족시켰다. 혹여 정치적 반대 진영에서 논란으로 삼을 소지가 있는 요소들을 미리 알고 있는 명민함, 그러니 얼마나 고뇌를 거듭해 내린 결론인지 느껴져서 더욱 사무치는 약속들, 결코 의심할 수 없고 숨길 수 없는 진심은 그대로였다.


 우리 나라건 남의 나라건 대통령의 말에 이런 저런 대단한 의미를 부여해본 적이 없었다. 별로 그런 성향도 아니다. 더욱이 국가기념식 같은 자리에서 하는 형식적인 연설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고 감수성을 폭발시키는 게 낯간지럽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 6.10민주항쟁기념식을 보면서 또 한 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드물게도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하고 챙겨보고 싶게 만드는 대통령이 나온 건 사실인 것 같다는. 그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그 말들이 "예쁜 말들"이기를, 진심임을 앞으로도 믿고 싶다.


 사족...

 *굉장히 오래 전 그가 인권 변호사 문재인일 때, 일 때문에 그와 통화했던 적이 있다. 너무나 오래된 일인데 신기할 정도로 그 날의 분위기와 전화기 너머 그의 말투가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따뜻했을까? 아니. 건조하고, 단호하고, 위엄이 느껴지는 낮은 음성, 그런데 상대방이 주눅 들게 하는 말투는 또 아닌, 하여간 지금까지도 그런 말투를 가진 사람을 만나기가 힘들다. 


 대체로 단호하면 교만하게 느껴지거나 기분을 상하게 만들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즈니스 통화라는 것이 으레 쌍방의 포지션이 거의 명확한 상태에서 부탁 받는 것 아니면 부탁하는 것, 확인 하는 입장 아니면 확인 당하는 입장 아닌가. 

 

 결론을 말하면 그 날 나는 거절을 당했다. 이유가 너무 충분한데다 요만큼도 더 설득할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 단호한 거절이었는데, 그럼

에도 그가 거절 대신 제안한 대안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당시 갓 사회에 나온 햇병아리였던 나는 속으로 '나도 저렇게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는 기억조차 없을 에피소드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