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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TV

tvn<비밀의 숲>-조승우, 검사 캐릭터의 신세계를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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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대한민국 드라마는 두 가지로 나뉜다.

검사가 나오는 드라마, 검사가 나오지 않는 드라마!

설정도 다양하다.


나쁜 검사

더 나쁜 검사

진짜 나쁜 검사

복수하는 검사

연애하는 검사

아이돌처럼 잘생긴 검사

지질한 검사

불의에 맞서는 정의로운 검사

돈과 출세에 눈 먼 더러운 검사

범죄자 보다 악랄한 비리 검사



일단 검사 캐릭터만 등장하면 반은 성공인 셈!

 몇 년 전 <펀치>로 재미를 톡톡히 본 SBS는 얼마 전 막을 내린 <피고인>에 이어 곧 방영될 <조작>까지 ‘검사 드라마 불패신화’를 다짐하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한 때 TV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악역의 대명사가 “형사”였다면 지금 그 자리가 “검사”로 바뀌었다는 것. 과거 TV드라마에선 “검사님”이 정의의 사도인 시절도 있었다. 머리 좋고, 똑똑하고, 약자를 보호하며, 로맨틱하고, 정의로운데다 액션 마저 잘 하시는......(<모래시계>만 떠올려 봐도 알 수 있다. 너무 옛날인가?;;) 헌데 그러던 검사님들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뭐 그 이유는 본인들이 더 잘 알테지.


 검사 소재 드라마가 홍수를 이루다보니 내용도 거기서 거기, 무엇보다 검사들의 악행과 반전이 너무 징글징글해서 질리는 면도 없지 않았는데...... 우후죽순 쏟아지는 “검사” 드라마의 홍수 속에서 눈길을 사로잡은 엄청난 드라마가 나타났다.


<비밀의 숲>


주연: 조승우, 배두나

감독: 안길호 ∥ 극본: 이수연




<비밀의 숲>, 왜 특별한가?-①


 많고 많은 검사 캐릭터들이 드라마를 위해 한 몸 바쳤건만 이렇듯 독보적으로 독특한 캐릭터는 처음이다.


감정을 느낄 수 없는 검사 황시목...


 극중 조승우가 맡은 황시목이라는 캐릭터는 14살 이후 감정을 느끼는 뇌의 일부분이 손상되어 오직 이성으로만 세상을 보는 인물이다. 말랑말랑한 감성 대신 이성을 앞세워 법을 수호하는 검사야말로 그에겐 최상의 직업이다. 그런 그의 눈에 검찰 조직은 이성이 마비된 거대한 비리 덩어리이다. 초보 검사 시절, 그는 원리원칙대로 간부, 동료를 막론하고 위법 실태를 고발했고, 그 결과 내부 고발자들이 그렇듯 조직의 왕따로 살아간다.

 정의감이 없어서가 아니라 해봐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점차 비리에 침묵해가던 그에게 어느 날 운명적인 사건이 펼쳐진다. 조직의 비리를 밝혀내고 판을 갈아엎을 절호의 기회, 하지만 그 사건과 함께 시목의 인생은 거대한 혼란에 휩싸인다.



 별명: 무시봇, 팩트폭행러

 ●특기포장마차에서 소주 마시는 동료들 뻔히 보며 무시하고 지나가기, 

혼자 밥 먹기,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인류애 없는 팩트 폭행하기


    


●코디 필수템: 법정 갈 때 특히 애정하는 분홍 보따리, 요즘 나랏일 좀 하시는 분들은 다 들고 다닌다는 백팩


    


 존에도 비슷한 캐릭터들은 있었다. <비밀의 숲>의 황시목처럼 뇌를 다쳐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거나, 마음의 상처와 트라우마로 인해 인간 관계에 냉정하다거나, 법전만 파다보니 감정 표현에 어둡다거나 등등 다양한 성격적 결함을 가진 캐릭터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배우들이 그러한 캐릭터를 표현하는 연기란 마치 ‘화난 사람’ 같거나, 너무 우울하거나, 몹시 무미건조해서 시청자로서 좀체 매력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단언컨대 조승우의, 조승우에 의한 조승우를 위한 캐릭터

 그런데 <비밀의 숲>의 황시목 아니 조승우는 달랐다. 

 그는 화난 표정이 아니라 감정을 느낄 수 없어서 나오는 “무표정”을, 감정대신 오로지 논리로만 사고하고 판단하는 기계 같은 인간의 정제된 몸 연기를, 뛰어난 두뇌를 가진 자들 특유의 번뜩하고 빛을 내는 명민한 눈빛을, 최소한의 필요한 말만 하고 지내는 사람 특유의 낮은 발성과 장단 고저 없는 억양을, (정작 본인은 외로움을 느끼지 조차 못하지만) 그 존재 자체로 고독한 한 인간의 내면을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다.


 특히 말이 많지 않은 캐릭터의 특성상 많은 부분을 눈빛으로 대신하는데, 이 눈빛 연기가 참말로 풍부하다.


무미건조한 눈빛

날카로운 눈빛 

정말 모르는 걸 물을 때의 순진한(?)눈빛 

(주로 자신은 느끼지 못하는 감정에 대한 호기심;)


조금만 웃어도 금세 로코의 남주인공으로 변신하는 

개구진 눈웃음을 걷어내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대단한 점은 이토록 감정 없는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정나미가 떨어지기는커녕 측은지심이 몰려온다는 것. 

 ‘로코로코’하지도, 다정한 말 한마디도, 스타일리쉬한 의상은 커녕 무채색의 정장 아니면 시커먼 법복만 입고 나옴에도 불구하고 보고 있으면 마음이 설렌다.

 

<비밀의 숲>, 왜 특별한가?-②

 <비밀의 숲>은 검사 드라마라기보다 웰메이드 추리극이다.


 


 어느 날 검찰 간부들에게 전방위적으로 뇌물을 뿌려대고 협박하던 사업가가 죽었다. 의문의 살인 현장, 경찰과 검찰은 신속하게 용의자를 검거하지만 그가 감옥에서 무죄를 주장하며 돌연 자살을 하고 만다. 그리고 그 죽음 뒤에 얽히고 설킨 비리 검사들의 추악한 진실 게임...


 첫 회부터 밀도감 넘치는 스토리 라인과 캐릭터 소개를 마친 드라마는 단도직입적으로 시청자를 끌어당긴다. “박무성을 죽인 진짜 범인은 누구이며 이 모든 일을 꾸민 배후는 누구인가?” 드라마의 화두는 명확하다.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진짜 범인과 그 배경 뒤에 숨은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는 새로울 것이 없는 구도다. 그러나 자칫 익숙할 수도 있는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솜씨는 매우 정교하다.


비리 사업가 박무성을 죽인 자는 누구일까?

억울함을 호소하며 자살한 케이블 TV 기사는 정말 진범이 아닌 걸까?

죽은 박무성에게 비밀스런 약점을 잡혔던 차장검사 이창준은?

출세에 눈이 멀어 이성이 마비된 서동재는?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신입 검사 영은수는?

계속해서 묘한 느낌을 풍기는 박무성의 어머니는?

하물며 가끔 원인불명의 두통으로 정신을 잃는 황시목까지 모두가 의심스럽다.


 거미줄처럼 예민하게 얽혀있는 사건, 그리고 그 본질을 향해 한 꺼풀씩 벗겨지는 추악한 비밀들도 눈을 뗼 수 없게 만든다.

 <비밀의 숲>은 편하게 소파에 드러누워서 볼 수 없는 드라마다. 작은 대사 한 마디, 배우들의 표정, 극 중 설정 하나까지 작가가 깔아 놓았을지도 모를 복선을 행여 놓칠까봐 광고가 나가는 60초 안에 화장실 다녀올 여유도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마치 영화 보듯 집중해서 보게 만드는 특별한 드라마다.


<비밀의 숲>, 왜 특별한가?-③




조승우 VS 배두나 명불허전 동료 케미

 

 최근 미드·영드의 전문직 드라마를 보며 한껏 높아진 시청자의 눈높이에 맞춰 한국 드라마에서도 장르물에 “러브라인”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늘고 있다.

 <비밀의 숲> 역시 수려한 장르물이 될 가능성이 보인다. 게다가 무려 남녀 주인공이 배두나·조승우다. 무슨 연기를 하든 캐릭터 그 자체로 완벽한 소화력을 보여주는 조승우, 그리고 그만큼이나 뛰어난 배우 배두나가 만났다. 무척 오랫동안 그녀가 한국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았음에도 캐릭터를 소화하는 그녀의 연기는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형사 캐릭터를 소화했던 많은 여배우들이 너무나 '연기하듯 형사 연기를 했다'면, 배두나는 진짜 경찰대를 나온 열정 넘치는 여형사 같다. (아무렴 그녀는 '배두나'니까...)특히 사건 현장에서 지문을 채취하거나, 동료들과 대화하는 장면에서 그녀가 보여주는 디테일한 몸 연기와 (특히 손가락 하나까지 섬세한) 딕션은 배두나가 형사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진짜 여형사 그 자체로 보이게 만든다. 여기에 어떤 캐릭터를 맡든 그 캐릭터에 특유의 귀여움과 인간적인 온기를 불어넣는 배두나의 연기는 가히 독보적이다. 그녀의 이런 연기는 드라이하게 흘러가는 추리극에 리듬감과 활기를 더해준다. 부디 작은 바람이 있다면 황시목과 사심없이 ‘일만하는’ 동료 케미의 정석을 보여주길 바란다는 점! 


 좀처럼 한 화면에서 보기 힘든 좋은 배우가 출연하고, 세련된 연출과 밀도 높은 이야기의 힘이 돋보이는 드라마가 나왔다. 영화 한 편 못 보고 지나가는 주말도 당분간은 <비밀의 숲>을 보는 걸로 서운함을 달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