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어쩌다 TV

<나의 아저씨>-진짜 어른을 이야기 하다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살면서 어른답지 않은 어른을 적지 않게 보았다. (물론 훌륭한 어른들도 없지 않았다.) 종종 생각지도 못했던 이중성으로 뒤통수를 얼얼하게 만드는 어른을 겪은 일도 있다. 어쩌면 그 뒤로는 정말 좋은 어른이었는데 못 알아봤거나, 혹은 알아보지 않으려하며 흘려보낸 인연들도 있었을 것이다.



어른답다는 것을 딱 뭐라고 콕 집어서 말하기는 애매하지만 대략 이런 미덕이 아닐까 생각한다. 책임감, 일관성, 당당함, 너그러움, 인간에 대한 연민.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 속의 동훈은 드라마에서 드물게 발견한 어른다운 어른이다. 흔히 드라마에서는 대개 어른을 이렇게 묘사한다. 일단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으로 캐릭터를 설정한 다음 그의 입을 빌어 소위 젊은 것들과 시청자들에게 교훈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 말이다.

왜 그럴까...아마도 내면적으로 성숙한 어른다운 어른이라는 캐릭터를 대본과 연출로 묘사하기도, 또 이를 배우가 연기로 표현하기도 쉽지 않아서가 아닐까 싶다. 그러다보니 기본적으로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이라는 전형적인 캐릭터의 옷을 입힌 다음 그의 대사를 통해 “이 사람은 어른이야. 그러니까 그가 하는 말은 어른다워. 옳아.”하는 식으로 메시지를 강요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아저씨> 속 이선균이 연기하는 동훈이라는 캐릭터에는 '어르신'이 아닌 ‘어른다운 인간’에 대한 박해영 작가의 진지하고 깊은 고민과 성찰이 녹아 있다. 기존 드라마에 없던 진짜 ‘어른 남자’ 나아가 ‘어른 사람’을 그리고자 하는 작가의 노력이 엿보인다.


“사람에게 감동하고 싶다. 

요란하지는 않지만,

인간의 근원에 깊게 뿌리 닿아 있는 사람들.

여기 아저씨가 있다.

우러러 볼만한 경력도, 

부러워할 만한 능력도 없다.

그저 순리대로 살아갈 뿐이다.

그러나 그속엔 아홉살 소년의 순수성이 있고,

타성에 물들지 않은 날카로움도 있다.

인간에 대한 본능적인 

따뜻함과 우직함도 있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인간의 매력’을 

보여주는 아저씨.

그를 보면, 맑은 물에 눈과 귀를 

씻은 느낌이 든다.”


-박해영 작가 / 드라마 기획 의도 중에서-



동훈은 아저씨이다. 주변에 너무나 흔해빠진 그냥 “아저씨”. 크게 눈에 띄지도 않고, 야망이라든지 박력이라든지 따위 마초적인 매력도 없고, 그렇다고 자상하거나 능글맞거나 유머 넘치는 성격과도 거리가 먼 평범한 아저씨. 적당히 괜찮은 대학을 졸업하고, 적당한 나이에 취업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면서 인생이 뒤흔들릴만한 사건 사고 근처에는 가본 적도 없는, 그저 하루하루를 마치 ‘성실한 무기징역수’처럼 꾸역꾸역 버티며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아저씨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이 아저씨의 모습이 남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그는 매사 심드렁한 표정으로 주변 일에 무심한 척 자기를 포장하지만, 실은 사무실의 복사기보다 존재감 없는 파견직 아르바이트생이 “춥게 입고 다니는 아이"라는 걸 알아보는 사람이다. 한겨울에도 얇은 운동화를 신으며 낡고 초라한 외투를 껴입은 채 어두운 얼굴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는 것을 알아보는 인간이다.



"-누가 날 알아. 나도 걔를 좀 알 것 같고. 

-그래서... 좋아?

-슬퍼. 

-왜?

-나를 아는 게 슬퍼. "



회사 동료도 아니고, 그저 스쳐가는 존재에 불과한 파견직 알바생의 힘든 사정을 알아차리게 된다고 해도 보통의 경우 잠시 동정하고 말거나 남의 일로 외면하거나 그 약함을 이용하거나 멸시하기 쉬운데, 나의 아저씨 동훈은 그것을 눈에 밟혀하고 도와주는 인간이다. 어쩌면 그 마음은 사람이 사람에게 가져야할 가장 기본적인 도덕심인 ‘연민’에 기인한다.


  


“나는 걔 얘기 들으니까 

불쌍해서 눈물이 나던데 

너는 눈물이 안 나냐?” 


-9화 중-



“너희들은 걔 안 불쌍하냐? 

경직된 인간들은 다 불쌍해. 

살아온 날들을 말해주잖아. 

상처받은 아이들은 너무 일찍 커버려. 

그게 보여. 그래서 불쌍해.


-4화 중-


드라마 시작 전 (지금 와서 보니 참말로 터무니 없는)논란이 되었던 동훈과 지안의 관계는, 중년이 된 남자와 스무 살 넘게 나이 차이가 나는 여자 아이 사이의 그렇고 그런 감정이 아니라, 그 자신 또한 나약한 인간으로서 눈 앞에 바스라질 듯 연약하게 흔들리는 한 존재를 보며 '사람'이라면 마땅히 가질 수 밖에 없는 감정, 작가가 말했듯 인간에 대한 본능적인 따뜻함과 우직함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마음 저 깊은 곳이 묵직하게 뜨거워져온다. 어느덧 내가 누군가에게 어른이 될 나이가 되고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마음을 누른다. 살면서 어떤 일 혹은 누군가가 눈에 밟힌다면 그 마음을 무시하고 살지는 말자, 다짐을 해본다. 



누구든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과의 만남은 인생의 빛


누구든 나를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살아갈 가치가 있다. 어릴적 엄마에게 버림 받고, 그 엄마가 남긴 빚 때문에 악귀 같은 사채업자에게 매를 맞으면서도 도망가지 않고 악착 같이 빚을 갚는 아이, 식당에서 야간 설거지 알바를 하며 손님들이 남긴 음식과 사무실에서 훔쳐 온 믹스 커피로 허기를 때우면서도 할머니를 위해 마트에서 홍시를 사는 아이, 온 몸이 으스러져라 일해도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비참한 빈곤 속에서 말 못하고 거동조차 힘든 조모를 따뜻하게 보살피는 아이... 그런 지안에게 동훈이라는 어른이 건네는 “착하다”라는 말 한마디는 차가운 지안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위로이다. 비록 지금은 남이 남긴 찬 밥 한 덩이를 삼켜야할지라도 앞으로 살아갈 나날 동안 문득하고 가슴 속에 따뜻함이 차오르게 만드는 힘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힘으로 절망의 터널을 견뎌내며 내일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동훈과 같은 어른이 많은 세상이 되기를, 나 또한 그런 어른으로 늙는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